- - 녹색평론 188호 ‘책을 내면서’를 읽고 -
정명옥 칼럼/식량닷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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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명옥 식량닷컴 이사 | ||
비교우위론에 빠진 한국정부 관료들이 ‘냉정한 세계시장에서 우리 농업이 경쟁력을 키우지 않으면 도태돼야 한다, 농업은 사양산업이다’라는 논리를 펴는 것에 대해 녹색평론 발행인(김정현) 은 ‘농업은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농업은 산업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농업은 끝내 사멸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확신에 찬 주장을 한다< 『녹색평론 188호』(2024년 겨울호) ‘책을 내면서’ p8>.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내가 친환경 급식운동을 활기차게 벌이던 때 목소리 높여 주장하던 언설이다. 먹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먹이는 일 즉 ‘급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그런데 당연한 얘기지만,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사가 전제돼야 ‘먹이는 일’ 또한 가능하겠다.
우리나라는 1987년 11월 농업박물관을 서울 충정로에 개관했다. 농업박물관은 소중한 전통 농경유물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를 잘 보존하여 후대에 교육용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설립했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벌써 37년 전 얘기다. 농업박물관의 사업주체는 농업협동조합법(이하 농협법)에 근거하여 설립한 농협이다. 농협법은 목적을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의는 비문(非文)이다. 경쟁력 강화라는 표현이 그렇다. 농업은 경쟁할 상대가(산업이) 없다. 농업 즉 먹거리 생산 문제를 ‘경쟁적’으로 바라본다는 것 자체에 불의와 모순이 내재하고 있다. 먹거리는 곧 ‘생명’이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농업박물관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몇 가지 자료를 살펴봤다. 그중에서 농업지식창고라는 코너를 들여다보니 ‘농업의 기능’이라는 글이 검색된다. 농업박물관에서 설명한 농업의 기능은 첫째 먹거리 공급 기능, 둘째 홍수방지 및 환경보전 기능, 셋째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기능, 넷째 농촌 지역사회 유지 기능으로 정리돼있다.
첫 번째 먹거리 공급 기능을 설명하는 문장에 ‘농업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우리농업의 정체성을 기본적으로 ‘산업’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이다.
산업이라는 낱말의 사전적 정의는 ‘인간의 생활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사업. 농업ㆍ목축업ㆍ임업ㆍ광업ㆍ공업을 비롯한 유형물(有形物)의 생산 이외에 상업ㆍ금융업ㆍ운수업ㆍ서비스업 따위와 같이 생산에 직접 결부되지 않으나 국민 경제에 불가결한 사업도 포함하며, 좁은 뜻으로는 공업만을 가리키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것도 농업은 ‘1차 산업’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녹색평론 발행인은 ‘농업은 산업인 적이 없었다’고 웅변한다. 위의 낱말풀이에서도 좁은 뜻의 ‘산업’엔 공업만을 가리킨다고 부연설명처럼 덧붙이고 있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어야 했다.
프랑스 농부 조제 보베와 프랑수아 뒤푸르가 쓴『세계는 상품이 아니다』(홍세화 역, 울력 출판, ’2002)라는 책에서도 먹거리의 산업화, 상업화를 비판하고, 나쁜 먹거리를 강요하는 미국과 WTO체제에 대한 저항과 함께 세계화를 강하게 비판한다. 아니 비판을 넘어 비난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제 ‘상품’이 아닌 것을 찾기 힘들게 됐다.
AI가 등장하면서 사람의 감정마저 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실정이다(2013년에 개봉한 영화 <그녀;HER>는 미래를 2025년으로 설정한 SF멜로, 사랑 영화. 올해가 바로 2025년이다!). 그러므로 구매력 즉 ‘돈’이 없는 사람들은 ‘상품’을 구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의식주는 물론 ‘사랑’도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농민이 살아내기 힘든, 버티기 힘든 나라다. 헌법 제121조 제1항에는 분명히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는데 말이다. 금융자본주의는 농민뿐 아니라 온나라 국민을 채무자로 만들고 있다. 급진적인 정치·경제학자들은 현대 사회를 부채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있다. 이듬해 농사를 지으려면 겨울부터 농협에 ‘돈’을 빌려야 하고, 여름 내내 농삿일에 허리가 휘어지는데, 가을걷이 이후 부채의 원금과 이자를 갚으려면 허리가 또 휜다. 농업이 산업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있는 한 이러한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작년에 농민수도 200만 명 아래로 줄었다. 농민 감소는 먹거리 생산량 감소, 식량자급율 하락, 급기야 국가 존폐 위기를 부를 것이다.
새로운 체제를 상상해야 한다. 농업이 산업이 아닌 체제, 새로운 삶의 양식, 서로를 살릴 수 있는 공동체를 꿈꾸고 그것을 위해 함께 논의하며, 적극 행동할 때다. 농업은 산업이 아니다. 농업은 생명 그 자체다.
정명옥 기자/식량닷컴 이사 mfood119@hanmail.net
